정당공 인범(仁範)의 처음 이름은 운범(云範)이었다. 정당공은 1338년(충숙왕 복위 7년)에출생, 1350년(충정왕 2) 13세의 나이 로 강음요직(江陰窯直)이 되었다. 1355년(공민왕 4) 산원(散員:정8품)을 거쳐 장흥주부(長興主簿)가 되고, 1357년 예빈주부 (禮賓主簿:종7품)가 되었다가 이듬해 선덕랑(宣德郞:종6품)에 올라 감찰어사(監察御使)가 되었다. 1360년 진사시(進士試)에 합격, 전농주부(典農主簿)로 옮겼고, 1366년 승봉랑(承奉郞:정6품)에 올라 좌정언(左正言) · 지제교(知製敎)를 역임, 비어대 (緋魚袋)를 하사받았다. 1367년 전공좌랑(典工佐郞)을 거쳐 군부좌랑(軍部佐郞)에 전임, 지제교를 겸임했다.

1368년(공민왕 17) 31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마침내 돌아가셨다. 뒤에 단성익조공신(端誠翊祚功臣) · 광정대부(匡靖大夫:정2 품) · 정당문학(政堂文學) · 예문관대제학(藝文館大提學) · 지춘추관사(知春秋館事) · 상호군(上護軍)을 추증받았으며, 조선조 에 들어와서 형조참판이 더해졌다. 배위 경주 김씨(慶州金氏)는 정랑(正郞) 서인(瑞仁)의 따님으로서 두 아들을 두었으니 장남은 모(:혹은 慕), 차남은 곧 참의공(參議公)이다. [묘는 소재지를 알 수 없다. <동국여지승람>에는 공이 젊어서 학식이 많고 문장에 능했다고 칭송했는데, 풍덕부 인물조(條)에 나온다]